한국에서는 역대 대통령의 인기 순위를 매기면 노무현·박정희 전 대통령이 1, 2위를 다툰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다른 듯하다. 얼마 전 중국외교학원에서 만난 한 중국인 교수는 “중국에서 가장 평판이 좋은 한국 지도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라고 말했다. 물론 그의 말을 중국 전체 여론으로 보기는 어렵다. 또 실제 중국인 가운데 김대중 전 대통령을 아는 사람도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더 많은 중국인이 김대중이라는 이름을 기억하게 되고, 한국의 최고 지도자로 김대중 전 대통령(DJ)을 꼽을지도 모른다. 그의 중국어판 자서전이 나온 덕이다.
지난 1월11일 오후. 중국 베이징 시에 위치한 중국외교학원 국제교류센터에서 DJ의 자서전을 선물받았다. 초판 발행일을 보니 1월, 아직 채 인쇄 잉크가 마르지 않은 책이었다. DJ 사진을 큼지막하게 박은 책의 제목과 부제는 길었다. <韓國 前總統 金大中 自述-爲了民主, 我不后懷>(한국 전 대통령 김대중 자서전-민주를 위하여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그랬다. 중앙편역출판사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직접 쓴 자서전 <다시,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를 중국어로 번역해 출간한 것이다(<다시,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는 DJ가 1993년 직접 쓴 유일한 자서전으로, 그의 연설이나 대담 글과는 달리 진솔한 내면과 고백을 담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날 중국외교학원 국제교류센터 1103호 회의실에서는 이 책의 발간을 기념한 ‘김대중 정치외교 이념 연구토론회’가 열렸다. 토론자는 장리리 중국외교학원 외교연구센터 주임, 황유복 중앙민족대학 한국연구소장, 주펑 베이징 대학 교수, 주커촨 신화사 세계문제연구센터 연구원, 마샤오린(馬曉霖) 보롄서(博聯社) 대표, 한인희 (한국) 대진대 교수 등 10여 명. DJ 관련 정치 토론회가 처음이어서인지 신화사·중칭바오(中靑報)·베이징완바오(北京晩報) 기자 등이 참석해, 패널들의 ‘김대중론’과 ‘한반도 정치외교론’에 귀를 기울였다.
토론회 전 DJ 자서전 출판을 기획하고, 이번 토론회를 개최한 마샤오린 ‘보롄서’ 대표가 뜻 깊은 말을 꺼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자서전이 중국 출판 사상 최초의 한국 정치 지도자 관련 책자다”라는 말이었다. 이같이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을 왜 DJ 가족과, 한국 언론에 알리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시간이 촉박해서 할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한자 17만 자로 이루어진 DJ 자서전에는 한국판과 마찬가지로 그가 전남 하의도에서 태어나 대통령이 되기까지 과정이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왜, 지금 이 시점에 DJ의 삶과 정치 역정이 궁금했던 것일까? 마 대표는 고조되는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하고 파고가 높아지는 동북아시아 문제를 해결하는 데 “김 전 대통령의 정치철학과 신념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오윤현
김대중 자서전 출판을 기획한 마샤오린 보롄서 대표.
참고로, 마 대표는 17년간 신화사에 근무하며 이라크·쿠웨이트 주재 기자와 고급기자로 활동한 중동 전문가이다. 지금은 중국중동학회 이사와 CCTV 국제문제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보롄서(www.blshe.com)는 일종의 중국 실명제 블로그 연합체로, 변호사·교수·기자·공무원 같은 지식인 3만여 명이 실명으로 정치·외교·경제에서부터 여행·문화·스포츠까지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곳이다. “이제 보롄서는 중국 지식인들의 대본영으로 불린다”라고 마 대표는 말했다. 다음은 그와 나눈 문답.
왜 지금 베이징에서 DJ 자서전을 내게 되었나.
개인적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존경해 몇 년 전에 황유복 교수(중앙민족대학 한국연구소장)를 통해 판권을 구해놓았다. 그런데 최근 연평도 사건으로 남북이 긴박하게 대결하는 모습을 보며, DJ가 펼친 햇볕정책이 더 알고 싶어졌다. 나뿐만이 아니다. 중국 지식인과 민중도 DJ 정부의 북한 정책과 현재 이명박 대통령의 북한 정책이 어떻게 다른지 궁금해한다. 그래서 출판을 서두르게 되었다.
DJ의 무엇에 가장 끌렸나?
나라 사랑, 민주 열망, 상대 배려, 적에 대한 관용이다. 이 네 가지는 동아시아 지도자들이 갖기 어려운 덕목이다. 특히 관용은 김 전 대통령의 가장 큰 장점이다. 그는 자신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전두환씨와, 적이라 할 수 있는 김정일까지 포용했다.
DJ의 어떤 점이 젊은이들에게 지혜를 주나?
<다시,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는 DJ가 실의에 차 있을 때 쓴 책이다(1993년, DJ는 14대 대통령 선거에서 패한 뒤 정계 은퇴를 하고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연구 생활을 한다. 자서전은 이때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실의를 극복한 뒤 대통령이 되고, 노벨상까지 받는 과정은 중국의 젊은이들에게 충분히 귀감이 될 만하다. 자서전에서 DJ가 젊은이들에게 한 말들도 꽤 유익한 도움을 줄 것이다.
젊은이들에게 한 말이라면?
제목만 간단히 말하면 이렇다. ‘영어를 배워라, 흉내도 창조적으로 하라, 하루만 참자, 경청은 최고의 대화, 10년쯤 한우물을 파라’ 등이다.
DJ의 햇볕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개인적으로 적극 지지한다.
한국 정부조차 외면하는 햇볕정책을 지지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북한 정권은 늘 한국과 미국이 자신들을 전복시킬까봐 두려워한다. 이런 상황에서 생존하려면 핵무기를 만들 수도 있다. 그런데도 한국과 미국은 계속 북한을 압박만 한다. 그 결과는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상황 그대로이다. 한국 정부가 햇볕정책을 계속 펼쳤으면 어땠을까. 대립과 긴장을 피하고, 핵무기 문제로 골머리를 앓지도 않을 것이다.
한국에서도 자꾸 불편해지는 한·중 관계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간다.
중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지식인들 사이에 한국이 친구냐, 적이냐 하는 논쟁이 벌어질 만큼 한국(정부)에 대한 생각이 바뀌고 있다. 따지고 보면, 남북한을 대하는 중국의 태도는 변한 적이 없다. 중국 내 인터넷 여론도 북한의 3대 권력 세습과 연평도 공격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런데도 한국은 눈앞의 친구(북한과 중국)를 압박하려고 자꾸 먼 데 있는 친구(미국)를 데려온다. 중국 처지에서는 문 앞에 적이 나타나는 꼴이니 좋을 리 없다. 이제 한국 정부는 일본과 군사 교류까지 하려고 한다. 이득은 일본이 다 볼 것이다. 절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한국이 중국을 이용해서 얻는 경제적 이득을 생각하거나, 먼 미래를 내다본다면 절대로 요즘같이 국제 문제를 풀어서는 안 된다.
ⓒ시사IN 오윤현
DJ 자서전 출간을 기념해 한·중 국제문제 전문가들이 중국외교학원 국제교류센터에서 ‘김대중 정치외교 이념 연구 토론회’를 열었다.
중국 정부가 북한의 핵 개발에 반대하지도 않고 북한을 지원하는 데 대해, 속국화하려는 게 아니냐고 의심하는 사람도 있다.
중국 정부는 절대 다른 나라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 그것은 남북한에도 마찬가지다. 중국 정부가 북한을 돕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도적인 차원에서다. 한국이 북한 같은 처지가 되면 한국도 도울 것이다. 중국 정부도 북한 핵을 원하지 않는다. 북한이 가지면 남한과 일본도 가질 게 뻔하니까. 그리고 중국 정부는 북한을 속국화할 생각이 전혀 없는 것으로 안다. 중국 정부는 다만 혼란이 두려운 거다. 남북한에 분쟁이 일어나면 난민 수십만명이 발생할 것이다. 그들이 어디로 가겠나?
마 대표의 국제문제 논평은 끝이 없었다. 한반도를 바라보는 시각도 비교적 냉철했다. 말미에 DJ 자서전이 많이 팔리기를 바란다고 덕담을 건네자, 그가 웃으며 대꾸했다. “같은 생각이다. 초판을 5000부 찍었는데, 더 많이 찍고 싶다. DJ의 민주주의 열망 등을 더 많은 사람이 알면 알수록 중국에 도움이 될 테니 말이다.”
ⓒ 시사IN (http://www.sisainli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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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11일 오후. 중국 베이징 시에 위치한 중국외교학원 국제교류센터에서 DJ의 자서전을 선물받았다. 초판 발행일을 보니 1월, 아직 채 인쇄 잉크가 마르지 않은 책이었다. DJ 사진을 큼지막하게 박은 책의 제목과 부제는 길었다. <韓國 前總統 金大中 自述-爲了民主, 我不后懷>(한국 전 대통령 김대중 자서전-민주를 위하여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그랬다. 중앙편역출판사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직접 쓴 자서전 <다시,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를 중국어로 번역해 출간한 것이다(<다시,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는 DJ가 1993년 직접 쓴 유일한 자서전으로, 그의 연설이나 대담 글과는 달리 진솔한 내면과 고백을 담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날 중국외교학원 국제교류센터 1103호 회의실에서는 이 책의 발간을 기념한 ‘김대중 정치외교 이념 연구토론회’가 열렸다. 토론자는 장리리 중국외교학원 외교연구센터 주임, 황유복 중앙민족대학 한국연구소장, 주펑 베이징 대학 교수, 주커촨 신화사 세계문제연구센터 연구원, 마샤오린(馬曉霖) 보롄서(博聯社) 대표, 한인희 (한국) 대진대 교수 등 10여 명. DJ 관련 정치 토론회가 처음이어서인지 신화사·중칭바오(中靑報)·베이징완바오(北京晩報) 기자 등이 참석해, 패널들의 ‘김대중론’과 ‘한반도 정치외교론’에 귀를 기울였다.
토론회 전 DJ 자서전 출판을 기획하고, 이번 토론회를 개최한 마샤오린 ‘보롄서’ 대표가 뜻 깊은 말을 꺼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자서전이 중국 출판 사상 최초의 한국 정치 지도자 관련 책자다”라는 말이었다. 이같이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을 왜 DJ 가족과, 한국 언론에 알리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시간이 촉박해서 할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한자 17만 자로 이루어진 DJ 자서전에는 한국판과 마찬가지로 그가 전남 하의도에서 태어나 대통령이 되기까지 과정이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왜, 지금 이 시점에 DJ의 삶과 정치 역정이 궁금했던 것일까? 마 대표는 고조되는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하고 파고가 높아지는 동북아시아 문제를 해결하는 데 “김 전 대통령의 정치철학과 신념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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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자서전 출판을 기획한 마샤오린 보롄서 대표.
참고로, 마 대표는 17년간 신화사에 근무하며 이라크·쿠웨이트 주재 기자와 고급기자로 활동한 중동 전문가이다. 지금은 중국중동학회 이사와 CCTV 국제문제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보롄서(www.blshe.com)는 일종의 중국 실명제 블로그 연합체로, 변호사·교수·기자·공무원 같은 지식인 3만여 명이 실명으로 정치·외교·경제에서부터 여행·문화·스포츠까지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곳이다. “이제 보롄서는 중국 지식인들의 대본영으로 불린다”라고 마 대표는 말했다. 다음은 그와 나눈 문답.
왜 지금 베이징에서 DJ 자서전을 내게 되었나.
개인적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존경해 몇 년 전에 황유복 교수(중앙민족대학 한국연구소장)를 통해 판권을 구해놓았다. 그런데 최근 연평도 사건으로 남북이 긴박하게 대결하는 모습을 보며, DJ가 펼친 햇볕정책이 더 알고 싶어졌다. 나뿐만이 아니다. 중국 지식인과 민중도 DJ 정부의 북한 정책과 현재 이명박 대통령의 북한 정책이 어떻게 다른지 궁금해한다. 그래서 출판을 서두르게 되었다.
DJ의 무엇에 가장 끌렸나?
나라 사랑, 민주 열망, 상대 배려, 적에 대한 관용이다. 이 네 가지는 동아시아 지도자들이 갖기 어려운 덕목이다. 특히 관용은 김 전 대통령의 가장 큰 장점이다. 그는 자신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전두환씨와, 적이라 할 수 있는 김정일까지 포용했다.
DJ의 어떤 점이 젊은이들에게 지혜를 주나?
<다시,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는 DJ가 실의에 차 있을 때 쓴 책이다(1993년, DJ는 14대 대통령 선거에서 패한 뒤 정계 은퇴를 하고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연구 생활을 한다. 자서전은 이때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실의를 극복한 뒤 대통령이 되고, 노벨상까지 받는 과정은 중국의 젊은이들에게 충분히 귀감이 될 만하다. 자서전에서 DJ가 젊은이들에게 한 말들도 꽤 유익한 도움을 줄 것이다.
젊은이들에게 한 말이라면?
제목만 간단히 말하면 이렇다. ‘영어를 배워라, 흉내도 창조적으로 하라, 하루만 참자, 경청은 최고의 대화, 10년쯤 한우물을 파라’ 등이다.
DJ의 햇볕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개인적으로 적극 지지한다.
한국 정부조차 외면하는 햇볕정책을 지지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북한 정권은 늘 한국과 미국이 자신들을 전복시킬까봐 두려워한다. 이런 상황에서 생존하려면 핵무기를 만들 수도 있다. 그런데도 한국과 미국은 계속 북한을 압박만 한다. 그 결과는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상황 그대로이다. 한국 정부가 햇볕정책을 계속 펼쳤으면 어땠을까. 대립과 긴장을 피하고, 핵무기 문제로 골머리를 앓지도 않을 것이다.
한국에서도 자꾸 불편해지는 한·중 관계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간다.
중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지식인들 사이에 한국이 친구냐, 적이냐 하는 논쟁이 벌어질 만큼 한국(정부)에 대한 생각이 바뀌고 있다. 따지고 보면, 남북한을 대하는 중국의 태도는 변한 적이 없다. 중국 내 인터넷 여론도 북한의 3대 권력 세습과 연평도 공격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런데도 한국은 눈앞의 친구(북한과 중국)를 압박하려고 자꾸 먼 데 있는 친구(미국)를 데려온다. 중국 처지에서는 문 앞에 적이 나타나는 꼴이니 좋을 리 없다. 이제 한국 정부는 일본과 군사 교류까지 하려고 한다. 이득은 일본이 다 볼 것이다. 절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한국이 중국을 이용해서 얻는 경제적 이득을 생각하거나, 먼 미래를 내다본다면 절대로 요즘같이 국제 문제를 풀어서는 안 된다.
ⓒ시사IN 오윤현
DJ 자서전 출간을 기념해 한·중 국제문제 전문가들이 중국외교학원 국제교류센터에서 ‘김대중 정치외교 이념 연구 토론회’를 열었다.
중국 정부가 북한의 핵 개발에 반대하지도 않고 북한을 지원하는 데 대해, 속국화하려는 게 아니냐고 의심하는 사람도 있다.
중국 정부는 절대 다른 나라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 그것은 남북한에도 마찬가지다. 중국 정부가 북한을 돕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도적인 차원에서다. 한국이 북한 같은 처지가 되면 한국도 도울 것이다. 중국 정부도 북한 핵을 원하지 않는다. 북한이 가지면 남한과 일본도 가질 게 뻔하니까. 그리고 중국 정부는 북한을 속국화할 생각이 전혀 없는 것으로 안다. 중국 정부는 다만 혼란이 두려운 거다. 남북한에 분쟁이 일어나면 난민 수십만명이 발생할 것이다. 그들이 어디로 가겠나?
마 대표의 국제문제 논평은 끝이 없었다. 한반도를 바라보는 시각도 비교적 냉철했다. 말미에 DJ 자서전이 많이 팔리기를 바란다고 덕담을 건네자, 그가 웃으며 대꾸했다. “같은 생각이다. 초판을 5000부 찍었는데, 더 많이 찍고 싶다. DJ의 민주주의 열망 등을 더 많은 사람이 알면 알수록 중국에 도움이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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