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약 15년 만에 형사법정의 모습을 본격적으로 지켜봤습니다. 그동안 우리의 형사재판 절차가 놀랄 만큼 발전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지나치다싶은 안내심으로 진지하고 자유로운 법정분위기를 이끌어주신 재판장님과 판사님들, 또한 검사님들께 경의를 표합니다.
저는 40년 가까이 곽노현, 강경선 두 피고인과 친구로 지내왔습니다. 저도 살아오는 동안 많은 사람과 알고 지내지만, 그 중에서도 이 두 사람은 참으로 비범하고 고결한 사람들입니다. 세속적으로 성공하겠다거나 자신의 이익을 챙기겠다는 욕망이 없는, 세상에 보기 드문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늘 높은 이상을 추구해 왔고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과 자비를 베풀어 왔습니다. 이들은 세속의 차가운 법의 틀을 뛰어넘는 치열한 영적, 도덕적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세상이 알아주는 서울법대에 다니면서도, 저와 같은 범속한 사람과는 달리, 고시와는 처음부터 담쌓고 법철학 공부를 했습니다. 이들의 관심과 인생관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한편, 이들은 세상의 눈높이에서 보면 매우 비현실적인 사람들입니다. 특히 온갖 책략과 공격이 난무하는 선거판에서는 물가에 내놓은 아이 같은 이들입니다. 두 사람이 다 그렇지만 강경선이 더 그렇습니다. 저는 이 사건이 터지고 강경선 피고인이 박명기 피고인 측에 돈을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안 순간 직감했습니다. “아~ 이건 강경선의 작품이다.”
강경선 피고인은 박명기 피고인을 만나 그의 궁박한 사정을 들었습니다. 경제적으로 극도로 어려운 상황에서 자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박명기 피고인이 곽노현 친구를 원망하고 있음도 알게 됐습니다. 이런 때 ‘특별한 인간’ 강경선의 선택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박명기 피고인을 살리고 곽노현, 박명기 두 사람 사이의 형제적 인간관계를 회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곽노현 피고인에게 돈을 마련해 주자고 강권했습니다. 그리고 ‘비슷한 종류의 특별한 인간’ 곽노현도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얼마 전 저는 강경선 피고인을 만나 얘기를 나눈 일이 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공소시효도 끝난 시점에서 왜 박명기 후보 측에 돈을 줘서 지금과 같은 어려움을 만들었느냐? 가사 후보 사퇴 전에 대가지급을 약속했다고 가정하더라도 선거 끝나고 공소시효까지 끝난 상황에서 시쳇말로 ‘배째라’고 하면 그만이고, 또 선거판 상식으로는 그렇게 하는 게 정상인데, 왜 바보같이 돈을 줘서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친구 곽노현을 곤경에 빠뜨렸느냐?”
강경선 피고인이 대답했습니다. 아니 항변했습니다. “그럼 박명기 교수가 그렇게 어려운 처지에 있고 자살할지 모를 지경에 있었는데 그걸 그대로 보고만 있어야 했다는 말이냐?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냉혹할 수 있느냐?”
제가 다시 말했습니다.“박명기 교수가 뭐 그리 중요했느냐? 우리 친구 곽노현을 잘 보호했어야 하지 않느냐? 박명기 교수가 어찌되든 친구를 지켰어야지...”
강경선 피고인이 다시 대꾸했습니다. “너 같은 사람은 박명기 교수가 극단적인 선택을 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수 있는지 몰라도, 곽노현은 그러지 못하는 사람이다. 당시 상황은 박 교수가 극단적 선택을 할 우려가 컸고,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는 경우 곽노현은 교육감 직을 수행할 마음의 상태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었다. 그 점에서도 박 교수 측에게 경제적 지원을 하는 것이 당시 가장 바람직한 해결책이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나, 강경선의 처신이 가장 바람직했다.”
솔직히 저는 지금 이 순간에도 강경선, 곽노현 두 친구가 박 교수 측에 돈을 주지 않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이는 저의 세속적인 생각일 뿐이고, 두 친구가 사랑과 자비심에 바탕을 두고, 선량한 마음으로 돈을 준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라고 확신합니다. 이번 공판과정에서 이 점이, 즉 곽노현, 강경선 두 피고인의 고결한 인품과 박명기 교수라는 한 이웃에 대한 선의가 충분히 증명됐다고 생각합니다.
곽노현 피고인이 박명기 피고인 측에 준 돈이 객관적으로 박명기 후보 사퇴의 대가가 될 수 있을까요?
자 이제, 곽노현 피고인의 자리에 선의를 가지지 않은 범속하고 냉혹한 보통사람을 대신 놓고 따져봅시다. 그의 이름을 김갑동이라고 하죠. (김갑동은 제가 사법연수원 다닐 때 공부한 형사사건 모의기록에 나오는 피고인입니다)
돈을 준 시점에 김갑동은 이미 오래 전 후보단일화로 박명기 후보가 사퇴하고 선거까지 끝나 당선돼서 교육감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선거법 상의 공소시효까지 만료된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사회통념에 비추어볼 때 김갑동으로서는 박명기 피고인 측에 사퇴의 대가를 줘야 할 어떠한 이해관계도, 필요도 없었습니다. 김갑동이 사퇴의 대가를 약속한 바 없었으므로 약속 이행이 문제될 리 없고 돈을 안 준다고 오래전 이루어진 사퇴의 효력이 뒤집힐 리도 없습니다 돈을 줄 무슨 필요가 있었는지 검찰도 설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돈을 주었을까요?김갑동이 곽노현 피고인처럼 ‘선의’의 형제애를 발휘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무언가 반대급부를 기대했을 것인데, 무엇일까요?
당시는 박명기 피고인이 이xx, 양xx 간에 억대의 금전을 주고받기로 한 합의가 있다고 오해하고 김갑동 측에게 그 합의 이행을 끈질기게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 문제가 원만히 해결되지 않으면 박명기 후보 측이 위 ‘합의’사실을 외부에 공개할 조짐이나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만일 그처럼 위 '합의'사실을 외부에 공개한다면, 상당한 사회적 물의가 일어나고, 김갑동에게 엄청난 정치적, 사회적 불이익을 가져다주게 될 것이었습니다. 지금 검찰은 이 사건 돈 지급이 아니더라도 곽노현 피고인이 이xx, 양xx 간의 합의를 보고받고 승인했다고 보고 있는데, 이런 검찰의 태도라면 위 이른바 '합의'가 공개될 경우에 김갑동을 수사, 구속, 기소할 가능성이 클 것입니다. 다만 이때 적용법조로는 공직선거법 232조 1항2호가 아니라 1호가 되겠죠.
형사적인 문제를 제외하더라도 위 이른바 “합의”사실이 공개되면 김갑동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각종 언론 매체의 비난, 정치권 반대파의 비난, 여론의 비난 등등이 거세게 일어나 교육감 직의 수행에 큰 차질을 빚게 될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냉철하게 파악하고 예상한 김갑동으로서는 박명기 후보 측이 위 이른바 “합의”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공개를 막기 위해, 즉 박명기 피고인 측을 입막음하기 위해 돈을 주었을 수 있습니다. 김갑동이 준 돈은 입막음용이었다, 박명기 피고인 측의 비공개유지에 대한 대가였다고 보는 것이 사회통념에 맞을 겁니다.
검찰은 곽노현 피고인 측이 돈을 현금으로 은밀하게 준 것이 “범죄”의 증거나 정황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범죄행위”가 아니더라도 은밀하게 비공개로 해야 할 일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바로 이 사건의 돈 지급이 그런 경우입니다. 김갑동은 박명기 후보 측을 입막음하기 위해 돈을 은밀하게 주었습니다. 그것은 ‘비공개유지’의 대가는 될지언정 ‘후보사퇴’의 대가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이처럼 곽노현 피고인의 ‘선의’를 부정한다고 가정하더라도, 그가 준 돈은 객관적으로 박명기 후보 사퇴의 대가는 아닌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곽노현 피고인은 주관적으로 박명기 피고인의 후보사퇴의 대가가 아닌, 선의의 부조로 돈을 주었습니다. 그것은 객관적으로도 가령 입막음용, 즉 이xx, 양xx간의 위 이른바 ‘합의’사실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데 대한 대가일 수는 있을지언정 후보사퇴의 대가일 리 없음이 명백합니다.
곽노현 피고인은 무죄입니다.
2011. 12. 31 변호인 천정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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