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8일, 서울 금천구 시흥동에 있는 한 대형 빌딩의 2층 강당은 좌석을 가득 메운 500여 명의 중년·노년 여성들이 뿜어내는 열기로 뜨거웠다. 두 달째 오전 10시께부터 모여 종일 이곳에서 여흥과 오락을 하며 보낸다는 여성들은 이른바 ‘홍보관’ 고객들이다. 입구에는 ‘남성 및 40대 이하 여성 출입금지’를 알리는 현수막이 붙어 있고, 건장한 청년들이 찾아오는 여성의 신분증을 일일이 확인한 뒤에야 들여보냈다.
250여 평에 이르는 대형 실내 공간에는 가전제품, 이불, 주방용품 등 각종 생필품이 가격표가 붙은 채 빙 둘러 진열되어 있었다. 부착된 가격표는 대부분 ‘2000원+상품권 500장’과 같이 염가의 현금에 상품권을 묶는 방식이었다. 여성들이 이곳을 찾아 하루종일 보내는 대가로 홍보관은 매일 자체 제작한 50장 안팎의 상품권을 나눠준다고 한다. 이런 방식으로 관악구와 광명시 인근 중년·노년 여성 500여 명을 끌어들여 밀착형으로 물품을 파는 특수 판매 업체인 셈이다.
ⓒ뉴시스
경찰이 홍보관·체험방 등에서 사기를 당한 노인들을 대상으로 예방 상담을 하고 있다.
몇몇 참석자들을 만나 왜 매일 이곳 홍보관을 출입하는지 물어보았다. 경기도 광명시에서 왔다는 유 아무개씨(62)는 “자식들보다 더 잘해준다. 이곳은 우리같이 나이 든 여자들의 놀이터다”라고 말했다. 서울 신림동에서 온 강 아무개씨(59)는 “갈 데는 없고 자식들도 무관심한데, 여기서는 일일이 비위를 맞춰주고 공짜로 재밌게 놀게 해주니 물건이 좀 비싸더라도 자주 찾게 된다”라고 말했다.
업계 자체 추산으로 전국에 1만여 개가 분포한 ‘홍보관’은 방문 판매나 다단계 판매처럼 거래 형태를 기준으로 분류한 일종의 유통업종이다. 1980년대 일본에서 들어온 홍보관은 쉽게 표현해 매장을 임차한 뒤 짧게는 한 달에서 길게는 6개월 정도 한정해 영업을 하다가 매출을 올리면 다른 영업 장소를 물색해 떠나는 ‘메뚜기형 마케팅’이다. 지역과 취급 물품에 따라 ‘체험방’ ‘떴다방’ ‘지하방’ 등으로 불리는데, 이들 대부분은 주로 55세 이상 중·노년층 여성을 목표로 공략한다. 퇴직금이나 노후 자금 운용은 물론 소비의 주도권이 주로 이 세대 여성층에게 있다는 점을 겨냥한 것이다. 김정희 한국노년소비자보호연합 지도위원(47)은 “홍보관을 출입하는 노인 인구는 국내 전체 노인의 20~30%에 이른다. 특히 퇴직금을 받아 투자할 곳을 찾는 중년·노년 노인들이 주된 공략 대상이다. 또 돈이 없어도 간혹 적금을 깨고 전세금 빼내 홍보관을 찾아 물건을 사는 노인도 있는데, 그만큼 중독성이 강하다.”
사기의 온상으로 지목된 ‘홍보관’이 언론의 잇단 고발 보도와 공정거래위원회의 감시 강화 속에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홍보관 사업자들이 귀띔하는 신종 사기 수법은 교묘하다. 이들은 홍보관 개설 초기에는 무료 사은품을 무차별로 뿌려 노년 여성층을 끌어 모은다. 그 뒤 이어지는 신종 사기 상술에 대해 한 업자는 이렇게 말했다. “모객이 되면 원가 2만~3만원짜리 홍삼 음료 한 상자를 19만8000원에 내놓는데, 며칠 동안 공짜 선물을 줬기 때문에 참석자 대부분은 한 상자 정도는 산다. 이렇게 한 상자를 산 사람에게 열 상자 떠넘기기는 식은 죽 먹기다. 두 상자 사면 한 상자를 더 얹어준다고 하면 대개는 세 상자까지는 약간 부담을 느끼더라도 사준다. 이때 원가 3만원짜리 저질 공기청정기를 ‘본사가 특별 지원한 100만원짜리 경품’이라며 홍삼 음료 다섯 상자를 사는 사람에게 공짜로 주겠다고 내건다. 그러면 대부분 두 상자 더 산다. 이렇게 다섯 상자 산 사람에게는 역시 브랜드도 없는 3만원짜리 저급 이온수기 제품을 ‘200만원짜리 경품’으로 내건다. 홍삼 농축액 열 상자 사면 198만원이니 부가세 19만8000원 내면 사실상 200만원짜리 이온수기를 공짜로 받는다는 심리 때문에 대부분 덥석 산다.”
사기 당한 노인, 보호 방법 거의 없어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에는 기존의 ‘최면 상술’에 유사 금융을 교묘히 결합하는 현혹 마케팅도 등장했다. 처음에는 매일 공짜 사은품을 나눠주다가 부담감을 유발한 뒤 “매일 선물만 받아간다고 미안한 마음 갖지 말고 약간의 목돈을 맡기면 매일 이자 받아가는 셈치고 떳떳하게 필요한 물건들을 받아갈 수 있다”라고 유도한다. 이런 식으로 출입하는 중·노년 여성에게 작게는 수십만원부터 많게는 수천만원의 현금을 예치금 명목으로 받는다.
ⓒ시사IN 안희태
언론 고발과 공정위의 단속 아래 합법 상술로 변신을 꾀하고 있는 한 홍보관의 내부 모습. 노인들은 ‘중독성이 강해’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고 말한다.
이런 사기 상술로 피해를 입은 서울 양평동 김 아무개씨(73)는 “3부 이자를 쳐준다고 현금을 맡기라고 해서 처음에는 미심쩍어 50만원만 맡겼다가 이자받는 재미에 3000만원을 더 맡겼다. 그런데 석 달 뒤 본사에서 지급 정지가 내려왔다며 내가 맡긴 원금 액수만큼 물건으로 안겨줬다. 돈을 떼이느니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물건들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반발하거나 불만을 터뜨리는 고객에게는 조직폭력배를 동원해 협박하고 겁주는 일도 다반사다.
서울 흑석동에 사는 주부 양 아무개씨(56)가 그 같은 경험을 했다. 그녀는 요즘 조폭의 채권 추심 협박에 밤잠을 설친다. 2월8일 시흥동에 있는 홍보관에서 기자와 만난 양씨는 조폭이 보낸 채권 추심 통지서를 내민 뒤 어떻게 대응해야 하느냐며 울먹였다. 양씨가 보여준 통지서에는 2월28일을 기한으로 780만원을 송금하지 않으면 압류 및 소송 등 모든 법적 대응을 하겠다는 경고 문구가 들어 있었다. 화근은 2년 전 양씨가 한 홍보관에 갔다가 만병통치약이라는 꾐에 빠져 구입한 20만원짜리 ‘글루코사민’이었다. 뒤늦게 속은 사실을 안 그녀는 반품을 요구했지만 홍보관에서는 받아주지 않고, 물품 대금 채권을 조직폭력배가 운영하는 추심업체 손으로 넘겨버렸다.
하지만 노년 소비자는 이런 기막힌 상황에 처해서도 피해 구제를 받기가 쉽지 않다. 현재 악덕 상술로부터 노년층을 보호하는 법제로 민법·방문판매등에관한법률 등이 있지만, 일본에 비해 보호장치가 미약하다. 이를 보완하기 위한 입법으로 노인복지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되었지만 3년이 넘도록 묶여 있다. 김정희 한국노년소비자보호연합 지도위원은 “홍보관 판매는 일본처럼 ‘소비자계약법’을 별도로 만들어 민사법적으로 보호하든지, 아니면 방문판매법에 청약 철회권 내지 계약 취소권을 별도로 두어 소비자가 피해 구제를 받을 수 있도록 하루빨리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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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여 평에 이르는 대형 실내 공간에는 가전제품, 이불, 주방용품 등 각종 생필품이 가격표가 붙은 채 빙 둘러 진열되어 있었다. 부착된 가격표는 대부분 ‘2000원+상품권 500장’과 같이 염가의 현금에 상품권을 묶는 방식이었다. 여성들이 이곳을 찾아 하루종일 보내는 대가로 홍보관은 매일 자체 제작한 50장 안팎의 상품권을 나눠준다고 한다. 이런 방식으로 관악구와 광명시 인근 중년·노년 여성 500여 명을 끌어들여 밀착형으로 물품을 파는 특수 판매 업체인 셈이다.
ⓒ뉴시스
경찰이 홍보관·체험방 등에서 사기를 당한 노인들을 대상으로 예방 상담을 하고 있다.
몇몇 참석자들을 만나 왜 매일 이곳 홍보관을 출입하는지 물어보았다. 경기도 광명시에서 왔다는 유 아무개씨(62)는 “자식들보다 더 잘해준다. 이곳은 우리같이 나이 든 여자들의 놀이터다”라고 말했다. 서울 신림동에서 온 강 아무개씨(59)는 “갈 데는 없고 자식들도 무관심한데, 여기서는 일일이 비위를 맞춰주고 공짜로 재밌게 놀게 해주니 물건이 좀 비싸더라도 자주 찾게 된다”라고 말했다.
업계 자체 추산으로 전국에 1만여 개가 분포한 ‘홍보관’은 방문 판매나 다단계 판매처럼 거래 형태를 기준으로 분류한 일종의 유통업종이다. 1980년대 일본에서 들어온 홍보관은 쉽게 표현해 매장을 임차한 뒤 짧게는 한 달에서 길게는 6개월 정도 한정해 영업을 하다가 매출을 올리면 다른 영업 장소를 물색해 떠나는 ‘메뚜기형 마케팅’이다. 지역과 취급 물품에 따라 ‘체험방’ ‘떴다방’ ‘지하방’ 등으로 불리는데, 이들 대부분은 주로 55세 이상 중·노년층 여성을 목표로 공략한다. 퇴직금이나 노후 자금 운용은 물론 소비의 주도권이 주로 이 세대 여성층에게 있다는 점을 겨냥한 것이다. 김정희 한국노년소비자보호연합 지도위원(47)은 “홍보관을 출입하는 노인 인구는 국내 전체 노인의 20~30%에 이른다. 특히 퇴직금을 받아 투자할 곳을 찾는 중년·노년 노인들이 주된 공략 대상이다. 또 돈이 없어도 간혹 적금을 깨고 전세금 빼내 홍보관을 찾아 물건을 사는 노인도 있는데, 그만큼 중독성이 강하다.”
사기의 온상으로 지목된 ‘홍보관’이 언론의 잇단 고발 보도와 공정거래위원회의 감시 강화 속에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홍보관 사업자들이 귀띔하는 신종 사기 수법은 교묘하다. 이들은 홍보관 개설 초기에는 무료 사은품을 무차별로 뿌려 노년 여성층을 끌어 모은다. 그 뒤 이어지는 신종 사기 상술에 대해 한 업자는 이렇게 말했다. “모객이 되면 원가 2만~3만원짜리 홍삼 음료 한 상자를 19만8000원에 내놓는데, 며칠 동안 공짜 선물을 줬기 때문에 참석자 대부분은 한 상자 정도는 산다. 이렇게 한 상자를 산 사람에게 열 상자 떠넘기기는 식은 죽 먹기다. 두 상자 사면 한 상자를 더 얹어준다고 하면 대개는 세 상자까지는 약간 부담을 느끼더라도 사준다. 이때 원가 3만원짜리 저질 공기청정기를 ‘본사가 특별 지원한 100만원짜리 경품’이라며 홍삼 음료 다섯 상자를 사는 사람에게 공짜로 주겠다고 내건다. 그러면 대부분 두 상자 더 산다. 이렇게 다섯 상자 산 사람에게는 역시 브랜드도 없는 3만원짜리 저급 이온수기 제품을 ‘200만원짜리 경품’으로 내건다. 홍삼 농축액 열 상자 사면 198만원이니 부가세 19만8000원 내면 사실상 200만원짜리 이온수기를 공짜로 받는다는 심리 때문에 대부분 덥석 산다.”
사기 당한 노인, 보호 방법 거의 없어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에는 기존의 ‘최면 상술’에 유사 금융을 교묘히 결합하는 현혹 마케팅도 등장했다. 처음에는 매일 공짜 사은품을 나눠주다가 부담감을 유발한 뒤 “매일 선물만 받아간다고 미안한 마음 갖지 말고 약간의 목돈을 맡기면 매일 이자 받아가는 셈치고 떳떳하게 필요한 물건들을 받아갈 수 있다”라고 유도한다. 이런 식으로 출입하는 중·노년 여성에게 작게는 수십만원부터 많게는 수천만원의 현금을 예치금 명목으로 받는다.
ⓒ시사IN 안희태
언론 고발과 공정위의 단속 아래 합법 상술로 변신을 꾀하고 있는 한 홍보관의 내부 모습. 노인들은 ‘중독성이 강해’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고 말한다.
이런 사기 상술로 피해를 입은 서울 양평동 김 아무개씨(73)는 “3부 이자를 쳐준다고 현금을 맡기라고 해서 처음에는 미심쩍어 50만원만 맡겼다가 이자받는 재미에 3000만원을 더 맡겼다. 그런데 석 달 뒤 본사에서 지급 정지가 내려왔다며 내가 맡긴 원금 액수만큼 물건으로 안겨줬다. 돈을 떼이느니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물건들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반발하거나 불만을 터뜨리는 고객에게는 조직폭력배를 동원해 협박하고 겁주는 일도 다반사다.
서울 흑석동에 사는 주부 양 아무개씨(56)가 그 같은 경험을 했다. 그녀는 요즘 조폭의 채권 추심 협박에 밤잠을 설친다. 2월8일 시흥동에 있는 홍보관에서 기자와 만난 양씨는 조폭이 보낸 채권 추심 통지서를 내민 뒤 어떻게 대응해야 하느냐며 울먹였다. 양씨가 보여준 통지서에는 2월28일을 기한으로 780만원을 송금하지 않으면 압류 및 소송 등 모든 법적 대응을 하겠다는 경고 문구가 들어 있었다. 화근은 2년 전 양씨가 한 홍보관에 갔다가 만병통치약이라는 꾐에 빠져 구입한 20만원짜리 ‘글루코사민’이었다. 뒤늦게 속은 사실을 안 그녀는 반품을 요구했지만 홍보관에서는 받아주지 않고, 물품 대금 채권을 조직폭력배가 운영하는 추심업체 손으로 넘겨버렸다.
하지만 노년 소비자는 이런 기막힌 상황에 처해서도 피해 구제를 받기가 쉽지 않다. 현재 악덕 상술로부터 노년층을 보호하는 법제로 민법·방문판매등에관한법률 등이 있지만, 일본에 비해 보호장치가 미약하다. 이를 보완하기 위한 입법으로 노인복지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되었지만 3년이 넘도록 묶여 있다. 김정희 한국노년소비자보호연합 지도위원은 “홍보관 판매는 일본처럼 ‘소비자계약법’을 별도로 만들어 민사법적으로 보호하든지, 아니면 방문판매법에 청약 철회권 내지 계약 취소권을 별도로 두어 소비자가 피해 구제를 받을 수 있도록 하루빨리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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