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87) 전 북한 노동당 비서가 10일 오전 9시30분께 서울 강남구 논현1동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두 체제 오가며 극한 이념대립의 서슬에 섰던 인물. 파란만장한 삶은 그 같은 인생을 두고 한말일 것이다.
97년 망명직후 그를 엿볼 틈새가...
대북 임가공무역 노정호씨가 말하는 황장엽
|1997-02-15|04면 |정치·해설 |기획,연재 |1217자
◎“온건성향 개방의지 강한 인물”/작년 찻잔받침 등 반입 때 도움 받아/“자필서신 중개설은 와전된 것” 일축
망명을 신청한 황장엽 북한 노동당국제담당비서는 자립경제주의자로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대북 임가공사업에도 상당한 관심을 보여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황의 망명과정에서 우리측에 서신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던 노정호 씨피코 사장은 14일 『중개설은 와전된 것』이라고 일축하면서 『사실상 그의 개인비서인 김덕홍 여광무역사장과는 사업문제로 여러번 만난 적이 있다』고 밝혔다. 또 그는 북한과의 임가공무역을 하는 과정에서 황비서가 경공업부관계자를 통해 사업추진과정을 수시로 물어보는 등 깊은 관심을 보였다고 말했다.
노사장에 따르면 씨피코는 지난 95년 중국을 통해 북한에 철조망수출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김사장을 알게 됐다. 이후 남북 직거래가 불가능해 「M」이라는 지사를 북경에 설치할 때 황비서와 인연이 닿았다. 김사장의 천거로 지사장에 앉힌 현재의 P지사장이 황의 신임이 두터운 인물이었던 것.
노사장은 95년 당시 통일원에 이같은 대북임가공사업의 진행 결과를 통일원에 보고할때 사업성사를 위해 「사업을 열렬히 지지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제출했다. 이것이 망명서신중개로 와전된 것같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러나 그는 황의 도움이 있었다는데는 부인하지 않았다. 그는 지난해 7월과 12월에 북한으로부터 반입한 찻잔받침 연하장등 임가공물은 사실상 황비서의 도움이 있었기에 들여올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다』면서도 『김사장이 평양에 들어가면 황비서가 수시로 경공업부 관계자를 통해 이들 사업에 대해 자세히 물어보곤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노사장은 황비서에 대해 『온건성향으로 개방의지가 강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나진 선봉지역투자와 관련해 중국주재 북한 실업인들과 여러차례 접촉한 중소기업계 인사도 『황비서의 경제관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대체적으로 중국현지관계자들은 폐쇄된 상태에서의 자립자족보다는 개방을 통한 자립경제를 지향하는 인물로 평하는 편』이라고 전했다.
한편 노사장은 김덕홍에 대해서는 「수수께기 같은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그와 지난 1월11일 마지막 통화를 했다는 노사장은 『김사장은 무역관계 관심보다도 황비서의 개인비서임무로 정보수집등 다른 일에 더 열중한 것으로 보였다』면서 『우리쪽 사람들에게 경계를 하면서도 느닷없이 서울로 전화를 해 안부를 묻는 등 종잡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서영만 기자〉
[출처] 대북 임가공무역 노정호씨가 말하는 황장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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